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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이야기/Supersonics

라샤드 루이스 이야기 - Sonics.com

Lewis Has Grown Up Before Seattle’s Eyes

Kevin Pelton, SUPERSONICS.COM | October 19, 2006

만약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된다면, 다가오는 봄날의 어떤 날 경기에 선발 출전함으로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포워드 라샤드 루이스는 자신의 커리어 사상 526번째 경기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 경기에 출전함으로서 루이스는 숀 캠프를 밀어내고 시애틀 프랜차이즈 역사상 5번째로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로 기록되게 될 것이다. 98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시애틀에 뽑혔을 때부터 루이스는 캠프와 비교를 당해야만 했다. 두 선수 모두 NCAA를 거치지 않았지만 높은 드래프트 픽이 예상될 정도로 충분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드래프트 되고나서 8년이 지난 지금, 루이스는 숀 캠프를 비롯한 수많은 시애틀 프랜차이즈의 역사속 전설의 선수들과 나란히 서 있다.

"루이스가 시애틀에서 벌써 8시즌을 뛰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소닉스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루이스는 좋은 선수로 성장해왔어요. 그는 소닉스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중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소닉스 사장&CEO 월리 워커. 워커는 98년 GM으로 루이스를 드래프트 했다.

루이스가 루키시즌(파업으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치뤄진 1998~99시즌)에 함께 했던 15명의 소닉스 선수중에 현재 NBA에 남아있는 선수는 단 3명에 불과하다. 당시 팀 동료였던 데틀레프 슈렘프는 현재 소닉스 어시스턴트 코치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당시 소닉스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중에 아직도 소닉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는 라샤드 루이스가 유일하다. 현재 팀에서 루이스 다음으로 오래 소닉스에 머무른 선수는 올스타 가드 레이 앨런이다. 하지만 레이 앨런이 트레이드 되어 소닉스에 합류하기 전에 루이스는 이미 4시즌 반을 시애틀에서 뛰고 있었다.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처음 드래프트 된 팀에서 루이스처럼 8년 이상을 뛴 선수는 5명에 불과하다.

"언젠가 레이와 버스에서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그 예전 소닉스부터 여전히 남아있는 선수는 저뿐이더군요. 저는 시애틀에 가장 오래 있었고, 레이는 가장 나이가 많았죠. 저는 제 커리어 내내 소닉스에서만 뛰었습니다. 시애틀이 저의 어머니 같고, 저는 이 도시의 아들처럼 느껴져요." - 라샤드 루이스.

지금에 와서 본다면 루이스와 1998년 드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다. 당시 미디어와 리그 소식통들은 루이스의 고향팀인 휴스턴 로켓츠가 3장의 1라운드 픽 중에 하나로 루이스를 데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휴스턴의 1라운드 픽 3장은 모두 시애틀의 1라운드 픽(27픽)보다 높은 픽이었다. 소닉스는 prep All-Star games에서 라샤드 루이스를 눈여겨 봐왔지만 루이스는 시애틀과의 워크 아웃을 거절한 상태였다.

"루이스가 시애틀을 방문하지 않았을때 우리는 루이스가 우리보다 높은 픽을 가진 팀들로부터 지명 약속을 받았다고 가정을 했죠.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는 그 가정이 사실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당시 주어진 상황만 본다면, 로켓츠는 1라운드 픽이 3개 있었어요. 거기다 루이스는 휴스턴 출신이죠. 따라서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던 겁니다." - 소닉스 CEO 월리 워커

그러나 로켓츠는 그들의 3장의 1라운드 픽으로 마이클 디커슨, 브라이스 드류, 미스래드 트루칸을 지명했다.(이 선수들은 현재 리그에서 뛰고 있지 않다.) 루이스는 외면을 받았다. 센터가 필요했던 소닉스는 1라운드에서 블라디미르 스테파니아(역시 리그에서 뛰고 있지 않은)를 선택했다.그리고 2라운드에서는 남은 선수중에 가장 뛰어난 선수인 라샤드 루이스와 젤라니 멕코이를 연속으로 지명했다. 루이스는 밴쿠버에서 열린 드래프트에 초대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된 그린 룸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선수였다. TNT의 카메라는 루이스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잡아냈다.

"전화통화를 할때도 그랬고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고 루이스는 여전히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어요. 시작은 정말 볼품 없었죠. 그리고 나서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월리 워커

드래프트 다음날 소닉스는 루이스를 밴쿠버에서 데려왔다. 시애틀과 그의 새로운 팀에게 루이스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주일이 채 못되어서 NBA는 파업에 돌입했고 루이스는 소닉스와 계약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 기간동안 스스로 열심히 훈련에 임했고 2월초에 시작된 단축시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소닉스의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고 루이스는 팀에 합류했다. 당시 소닉스는 선발출전선수 4명이 30세 이상이었고 3시즌 연속으로 퍼시픽 디비전 챔프를 차지한 강팀이었다. 따라서 소닉스의 초점은 젊은 선수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하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라커룸에서 이런 상황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제가 처음 시애틀에 왔을때 팀에는 나이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정말 많았죠. 저는 진짜 어린애였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두려운 상황이었죠. 저는 경기에 뛰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뒤쳐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죠. 하지만 제 포지션에서는 이미 여러명의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고 있었어요. " - 라샤드 루이스

"경기장에서 저는 선수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매일 그랬죠. 비행기에서도, 호텔에서도 같이 있었습니다. 팀 연습도 같이 했죠. 하지만 팀연습이 끝나면 저는 혼자였습니다. 또 한명의 루키인 젤라니 맥코이가 있었지만 그는 저보다도 몇살이나 많은 선수였죠." - 라샤드 루이스

"루이스의 루키 시즌은 다른 루키들이 겪는 것처럼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 NBA 파업이 있었고 선수들이 모두 힘들어했죠.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확실히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루이스는 그당시에도 자신을 잘 관리했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관찰하고 그가 앞으로 해야하는 것들을 배워나갔죠." - 당시 팀동료였던 데틀레프 슈램프

휴스턴에서 시애틀까지 날라와 루이스를 도와줬던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루이스는 경기장 밖의 생활에서도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소닉스의 두명의 어시스턴트 코치 드웨인 케이시(現 미네소타 팀버울브즈 감독)와 네이크 맥밀란(現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 감독)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게임을 발전시키기위해 노력했다.

"연습에서 루이스는 제가 본 최고의 선수중에 한명이었습니다. 감독도 마찬가지 의견이었구요. 감독은 루이스의 게임에 당장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가르쳐야했습니다. 예를 들면 풋워크 같은 것 말이죠. 잠재력은 있어보였지만 아직 부족해보였거든요. 슛 스트로크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죠." - 월리 워커.

"네이트 맥밀란과 드웨인 케이시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저의 곁에 있어줬죠. 매일 같이 연습을 했습니다. 끈임없이 조언을 해줬구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면 저는 알 수 있었죠. 이 두 사람이 지금의 저를 있게한 장본인들 입니다." - 라샤드 루이스

루이스 같은 타입의 선수는 갑자기 수면위로 떠오르곤 한다. 당시 감독이었던 폴 웨스트팔은 상대팀에게 미스매치를 안겨주기 위해서 루이스를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스몰포워드가 아니라 슈팅가드로 출전시켰다. 루이스는 자신의 루키 시즌에 당시 소닉스 역사상 가장 어린 선발출전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부상선수들이 돌아오고 팀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루이스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다시 벤치 깊숙히 쳐박혀야했다.

루이스가 스타가 될 것이라는 이른 조짐은 루이스의 루키 시즌이 끝난 여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당시 여름에 보스턴 섬머리그가 기억나는군요. 루이스가 처음 뛰었던 섬머리그였습니다. 드웨인 코치가 팀을 이끌고 있었죠. 우리는 그해 드래프트했던 루벤 페터슨을 사인도 하지 않은채 섬머리그에 합류시켰죠. 드웨인은 라샤드 루이스를 벤치에서 출전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루이스의 경쟁심에 불을 지피기위해서였죠. 섬머리그의 마지막 경기였을껍니다. 루이스는 11-12인가 12-13인가의 아무튼 엄청난 필드골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를 지배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오케이, 이녀석이 감을 잡기 시작했구나' 하고 말이죠. 루이스는 기꺼이 경쟁을 받아들였습니다." - 월리 워커

1999-00시즌에 루벤 페터슨은 라샤드 루이스보다 몇 걸음 앞서서 시작을 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자신의 재능을 계속해서 실현시켜나갔다. 2월달에 댈러스와의 경기에서 30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3월달 토론토와의 경기에서는 28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급기야 루이스는 플레이오프 직전에 선발출전을 하게되었으며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15.4득점 6.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것은 팀에서 두번째로 높은 평균 득점이었다.

소닉스의 FSN 캐스터 켈빈 칼라브로에 의하면 그 시리즈가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루이스가 깨닫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실제로 동기부여가 된 것이죠." - 케빈 칼라브로

소닉스 KTTH 캐스터 데이빗 로크는 2002년 11월을 떠올린다. 루이스는 그 이전 경기들에서 몇 번의 위닝샷 기회를 놓쳤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워싱턴과의 경기에서 37득점을 기록했으면 박빙의 순간에 두번의 귀중한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비록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루이스는 선발선수가 된 이후에 많은 하일라이트들을 만들어왓다. 2003년 일본에서 열린 LA 클리퍼스와의 경기에서 50득점을 몰아치면서 소닉스 역사상 한경기에 50득점을 기록한 4번째 선수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많은 하일라이트 중에 최고의 것은 2004~05시즌 올스타로 선정된 것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것과 같이 루이스의 성장은 너무 미묘해서 잘 알아볼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루이스는 겨우 18살의 나이에 시애틀에 와서 이제는 27살의 자신감 넘치는 올스타 선수가 되어있다. 루이스가 소닉스를 위해 뛰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한때 기복있는 플레이를 지적받았지만 지난 시즌 출전한 78경기중에 루이스는 72경기에서 두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 락커룸에서 너무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팀의 공동주장으로서 팀의 화합을 위해 많은 발언을 하고 있다.

"드웨인 케이시와 네이트 맥밀란과 같이 연습하던 시절에는 아무도 지금의 제 위치를 생각하지 못했겠죠. 열심히 노력함으로서 저는 덴버에서 열린 올스타게임에 출전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불안한 마음으로 2라운드까지 넘어갔던 때를 생각합니다." - 라샤드 루이스

소닉스의 팬들은 루이스가 성장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저는 여기까지 성장했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배울것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 라샤드 루이스

"루이스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않았습니다. 지금 루이스는 아주 좋은 선수지만 앞으로 더 나은 선수가 될겁니다." - 월리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