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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이야기/NBA

MVP를 수상하지 못한 최고의 선수들 - SI.com

이 글에 소개된 많은 선수들은 리그를 지배했던 위대한 한명 혹은 두명 선수와 같은 시대에 뛰었기 때문에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엘진 베일러가 최고의 시즌을 보내던 시절은 빌 러셋(MVP 5회), 윌트 체임벌린(MVP 4회)이 리그 최고를 다투던 시기였다. 최근의 몇몇 선수들은 매직 존슨, 레리 버드, 마이클 조던과 같은 시기를 보내면서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8년차 이하의 선수들은 선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엘진 베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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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러가 1958년에 NBA에 입단할때까지 농구는 바닥에서 하는 경기였다. 베일러는 공중에서 플레이한 최초의 선수였으며 자신이 원하는 슛을 쏘기위한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체공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6-5의 포워드였던 베일러는 근육질의 몸을 가진 순발력이 좋고 빠르고 운동능력을 갖춘 강력한 선수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수였고 이후 등장할 플라이어와 글라이더들에게 청사진을 제시했다.


조지 마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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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MVP 시상이 더 일찍 만들어졌더라면 리그 최초의 슈퍼스타는 3번 혹은 4번의 MVP를 수상했을 것이다. MVP 시상은 1955~56시즌이후에 만들어졌는데 55~56시즌은 마이칸의 커리어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마이칸은 미네아 폴리스 레이커스를 1950년, 52년, 53년, 54년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NBA 최초 왕조의 중심이었다. 마이칸은 2005년 별세했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다.


제리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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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동안 제리 웨스트는 리그 최고의 GM으로 또 선수를 육성하는 능력으로 NBA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그리고 그 이전에 그는 경기에 뛰었던 최고의 선수중에 한 명이었다. 14시즌을 뛴 웨스트는 14번의 올스타에 뽑혔다. 그는 커리어 평균 27득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5명의 선수중에 한명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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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NBA 전문가들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현재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코비는 MVP 트로피 없이 11시즌을 보내고 있다. 브라이언트는 레이커스가 리그 3연패를 이루는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샤킬 오닐의 그늘에 가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레이커스가 성적을 못내고 있기 때문에 MVP투표에서 표를 얻지 못하고 있다. 29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는 브라이언트는 앞으로 4년~5년 정도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릭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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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는 NBA와 ABA에서 25,000득점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베리는 지금껏 본중에 가장 뛰어는 패싱을 지는 포워드 중에 한명이었다. 그의 업적을 보면. 베리는 NBA와 ABA에서 모두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NBA와 ABA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했다. 또 마크 프라이스와 더블어 커리어 자유투 성공률이 90%가 넘는 유이한 선주 중에 한 명이다.


엘빈 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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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꾸준한 파워 포워드 중에 한 명. 빅 E의 턴어라운드 점프슛은 - 종종 베이스 라인에서 터졌던 -  카림 압둘 자바의 스카이 훅슛을 제외하면 리그 역사상 가장 블록하기 어려운 슛이었다.  헤이즈는 루키였던 1969년 샌디에고 로켓츠 소속으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1년 후인 34살에도 평균 23득점을 기록했었다.


돌프 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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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라큐스에 NBA팀이 없고, 코트에서 쉐이즈의 천재성은 4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쉐이즈의 위대함을 종종 잊곤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set-shooting 빅맨이 얼마나 멋드러진지 알기 위해 한가지 업적을 말해보겠다.쉐이즈는 1950부터 1961년까지 올 NBA 팀(퍼스트 혹은 세컨드 팀)에 12년 연속 선정되었으며 16시즌 동안 11,00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아이제이아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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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단순히 뛰어난 단신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선수중에 한명이었다. 다이나믹한 득점원이었던 토마스는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위력을 떨치던 시기에 소속팀 디트로이트를 2년 연속 NBA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는 4시즌 연속 20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후 그의 게임을 수비괴물 피스톤즈로 승화시켰다.


도미니크 윌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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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킨스는 게임 역사상 가장 익사이팅하고 막을 수 없는 득점원중에 한명이었다.그는 오늘날의 덩크슛들의 99%를 평범하게 보일 정도로 차원이 다른 덩크 슛으로 인해 얻은 휴먼 하일라이트 필름으라는 별명으로 리그에 발을 들여놓았다. 윌킨스는 두번의 덩크슛 챔피언을 차지했고 몇 번은 더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팬들과 동시대인들이 최고라 생각하는 덩크는 그가 하프코트에서 상대방 앞에서 펼쳤던 덩크들이었다.


존 스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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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탁턴은 NBA에서 19시즌을 뛰었다. 스탁턴은 레리 버드, 모제스 말론, 매직 존슨이 리그의 최고의 선수였던 시절 NBA에 데뷔했고 위의 선수들이 각각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시기에도 여전히 경기를 뛰고 있었다. 스탁턴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스탁턴은 앞으로 깨지기 힘든 NBA 기록중에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스탁턴은 15,806개의 어시트르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매직존슨보다 5,000개 이상 많은 것이다.


존 하빌리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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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통산 26,000득점 이상을 기록한 10명의 선수중에 한명인 하빌리첵은 빌러셀이 은퇴했음에도 보스턴 셀틱스가 계속해서 NBA 챔피언십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이유였다. 가장 다재다능하고 팀에 적합했던 선수인 하빌리첵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득점, 수비, 패스, 리바운드등을 지치지않고 해냈다. 그가 은퇴하고 29년이 지났지만 하빌리첵은 여전히 셀틱스의 올타임 득점 1위이며 보스턴 소속으로 가장 많은 경기를 출전한 선수이다.


페트릭 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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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타운을 졸업하고 NBA에 들어왔을때 유잉은 뛰어난 리바운더였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리그 역사상 가장 슛이 뛰어난 센터중에 하나로 탈바꿈했다.유잉 1988년에서 2000년까지 13시즌 연속으로 소속팀 뉴욕을(때때로 아주 평범한 선수들로 구성되기도 했던)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팀들(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게 좌절해야했다. 유잉은 뉴욕 닉스의 역대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스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리 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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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역사상 수비가 가장 뛰어난 포인트 가드. 페이튼은 그의 빠른 손으로 상대팀 가드들의 볼을 낚아챘을뿐 아니라 공격에서는 로포스트에서 포스트업을 통해 그들을 폭격했다. 역사에 남을만한 트래쉬 토커였던 페이튼은 항상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9년 연속 NBA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되었다.


폴 아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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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 폴이라고 불린 아리진은 점프슛을 발명해낸 선수는 아니었지만 점프슛을 NBA 레벨로 끌어올린 첫번째 인물로. 두번째 시즌이었던 1951~52시즌에 평균 25.4득점으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군복무를 위해 2년을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에 10번 선정되었다. 10시즌동안 평균 22.8득점을 기록했고 1956년 필라델피아 워리어스를 NBA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클라이드 드랙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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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반. 드렉슬러는 마이클 조던에 이어 두번째로 뛰어난 선수로 여겨졌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타고난 드랙슬러는 NBA에 들어온 초창기에 골밑으로 돌파를 함으로써 마음먹은데로 득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부드러운 점프슛을 장착하면서 막을 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비록 드랙슬러가 이끌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가 챔피언십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커리어 말기에 휴스턴 로켓츠로 트레이드 되어 1995년에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었다.


조지 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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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거빈이 들어올때까지 NBA에는 이런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이후 다시는 그런 타입의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ABA와 NBA를 거치면서 4번의 득점왕 12번의 올스타에 뽑힌 거빈은 아무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슛들을 꾸준히 성공시켰다. 오늘날 아주 어려운 각도에서 누군가가 러닝 뱅크슛을 성공시킨다면 아나운서는 마이크가 없어도 충분히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친다. "That was just a regular shot for the Ice Man!!"


아티스 길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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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로 그의 커리어동안 NBA에서 가장 강력했던 선수로 꼽히는 길모어는 1972년에 ABA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동시에 ABA MVP도 수상했다. 커리어 통산 59.9%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한 길모어는 NBA 역사상 가장 슛률이 높은 슛터중에 한명이다. 로포스트에서 길모어가 볼을 잡으면 여러명의 수비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득점을 성공시켰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 Favicon of http://neoroomate.egloos.com BlogIcon Roomate 2007.05.17 20:57

    곧휴는 정말 mvp 운이 없는 거 같아요. 솔직히 마이칸이나 웨스트는 이름만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 시절 mvp가 되는 것이 얼마나 빡센지 모르겠습니다만, 곧휴는 정말 몸으로 느껴져요. 저렇게 해도 못 타는구나 하는 느낌이요.

  • Favicon of https://kumsik.tistory.com BlogIcon 아둔패기 2007.05.21 03:17 신고

    "마이칸은 2005년 별세했지만 그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다." ^^b 그렇죠. 마이칸 드릴은 아마 영원히 지속되겠죠. 안습의 골밑슛으로 허구한 날 욕먹는 저로선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는... 그나마 이름이 익숙한 웨스트씨는 정말 의외군요. "제갈공명을 세상에 보내시고 왜 주유를 같이 보내셨나이까"라고 부르짖던 삼국지의 한 대목이 생각이 나네요.

    • Favicon of https://wwangel.tistory.com BlogIcon 폭주천사 2007.05.23 11:11 신고

      엠뷔피라는 것이 참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하는 것 같습니다. 2연패한 내쉬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