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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활

벌초하느라 얼굴이 다 익었다.

5월 5일은 큰아버지 생신이었다. 운산 큰댁에 모여 아침을 먹기로 했기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서 운산으로 향했다. 도로연수를 꾸준히해서 큰댁에 내려갈때는 내가 운전을 하려고 했었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여 일단 마나님이 운전. 고고~ 하지만 2박 3일의 연휴라서 그런지 서해안 고속도록 진입부터 화성휴게소까지 차가 밀려서(새벽 6시 30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큰집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들 산소에 벌초를 하러갔다. 산소에 풀이 너무 자라서 식구들이 모인김에 가서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한 것. 추석 전에 하는 벌초는 예초기를 사용했었다. 예초기 돌리는 사람이 힘들어서 그렇지 예초기로 하면 시간도 얼마 안걸리고 빨리 끝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호미로 일일이 다 풀을 매줘야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이런 일은 서툴다. 해서 같이 일하는 사촌형들이나 어른들에게 핀잔을 듣거나 놀림감이 되기 일수다. 이날 벌초에서도 나의 어설픈 호미질에 역시나 친척들은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보는 사람이 답답해서 그렇지 나는 나름 열심히 하는 것인데.-_-;;


우리 가족은 사촌형제들끼리 스타크래프트를 종종하는데 대화에서도 적절하게 스타 용어가 묻어나온다. 이를테면 " 낫쟁이 한 부대만 있으면 벌초 금방인데." 라던지. "까시 한부대로 그냥 갈아엎어야겠구만." 이런 식이다. 시골에서 자란 형들은 스타 용어도 참 토속적이다. 다크 템플러는 낫쟁이, 러커는 까시, 하이템플러는 찌짐이.등등


두시간에 걸쳐서 풀을 뽑았다. 익숙치않은 호미질에 손에 물집이 잡혔다. 의욕만 앞서고 요령이 없다보니 힘으로 하려다 보니 그리 되었다. 조금 지나서 익숙해지니 할만하겠던데...봄 볕에 며느리 낸다고 했던가 봄 햇볕이 의외로 따가웠다. 덕분에 모자도 안쓰고 벌초했던 나는 얼굴이 다 익어서 화끈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얼굴 시커먼데..


벌초를 마치고 아버지 가게에 잠깐 들렸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동생이 쓰던 컴퓨터를 가게에 가져다 놓으시고 인터넷도 연결하셔서 한참 사이버 세상을 경험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동안 여행다니시면서 찍으셨던 사진들을 이번에 CD로 모두 구워서 아버지 컴퓨터에 깔아드렸다. 원래는 뽑아서 드려야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보니 이리 되었다. 다음에 내려갈때는 트롯트 음악하고 영화 몇 편 구워서 갖다드려야겠다.


어버이 날이 멀지 않아서 내려온 김에 외갓댁에도 들렸다. 어렸을때만해도 외갓댁에 참 가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이 푸세식이었기 때문. 밤중에 마당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가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지금은 집을 다시 지어서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할머니댁 마당에는 아직도 그때 화장실이 남아있다.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외갓댁에 들리고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마나님이 자동차 열쇠를 줬다. 올라갈때 운전하라고. OK. 외할머니 마당에 주차된 차를 후진으로 빼는데 아직 어설퍼서 하마터면 할머니 밭을 다 갈아엎을뻔 했다. 겨우겨우 차를 빼서 출발. 뒤에 어머니께서 타시고 옆에 마나님이 타고.


서산톨게이트를 지나 화성휴게소까지 내가 운전을 하고 이후에 교대하기로 했다. 아직 초보라 밤길 운전은 위험하기 때문에. 서산 톨게이트까지가 운전하기 힘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일산은 승용차 운전자의 여성비율이 더 높다. 특히 아줌마 운전자들이 많다. 그래서 초보들이 버벅거려도 아줌마 운전자들은 갈구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택시나 버스 운전사들도 아줌마 운전자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니 자비란 없었다. 조금만 버벅대도 뒤에서 빵빵거리고, 나는 땀 삐질삐질.


서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니까 오히려 더 수월했다. 핸들조작도 그다지 할 필요가 없고 속도만 맞춰서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초보때는 앞차만 안들이박고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비켜간다고. 고속도로에서 달리고 있으니 그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실 답답한 건 다른 사람들이니까..슬슬 잘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체가 되었다. 알고보니 바로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 봉고차가 한바퀴 굴렀는지 앞부분이 완전히 구겨져있고 다친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죽었는지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 광경을 보니 다시 땀이 삐질삐질나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리고 이후 화성휴게소까지는 다시 긴장의 연속.


화곡동에 도착하니 9시였다. 어머니랑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11시. 피곤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새벽부터 또 콕이는 놀아달라고 난리다. 이놈이 일요일은 귀신같이 안다니까. 콕이의 울음소리에 깨서 일어났더니 몸이 여기저기 쑤신다. 쪼그리고 앉아서 풀을 맨탓에 허리도 아프고 어설픈 호미질 탓에 손목도 아프고. 머리는 띵하고.


오늘은 정릉 처가에 가기로 했다. 자주 인사를 못드리는데 어버이날에라도 찾아뵈어야지. 역시나 운전은 내가 했다. 일산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차도 없고 수월했다. 이제 슬슬 운전도 자신감이 붙어가는데. 하지만 서울에 진입하니 역시나 자비란 없다. 차도 많고 길도 좁고, 돌발변수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차가 많아서 차선바꾸기가 너무 어려웠다. 깜빡이만 하염없이 켜고 있다가 결국엔 차선 못바꾸고 그냥 달리기도 했으니. 그걸 보면서 옆에서 와이프는 참 답답해했다.


처가에 갔다와서 둘이 바로 다시 떡실신. 계속 자다가 이제서야 일어났다. 정말 빡센 주말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내일 하루 더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다. 내일도 하루종일 뒹굴뒹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