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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2009 사천가"

음악 이야기/공연 이야기

by 폭주천사 2009. 9. 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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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사천가 - 두산 아트센터 >

판소리의 "판"자도 모르는 내가 2009 사천가를 보러가게 된 것은 순전히 색시의 손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색시는 풍물패 박달소리 활동을 하면서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을 뿐더러, 2009 사천가를 공연하는 소리꾼 이자람의 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자람. 참으로 여러가지 얼굴을 가진 인물이다. "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라는 노래의 주인공 "예솔이"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최연소로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한 "신동 소리꾼"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고,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 의 보컬이자 작곡, 작사를 맡은 뮤지션 이자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EP앨범 - 붕가붕가 레코드>



"2009 사천가" 이자람이 소리꾼으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펼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자람은 사천가에 소리꾼으로 뿐만 아니라, 작가, 작창, 음악감독까지 무려 1인 4역을 해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날 공연에서 소리꾼으로 등장한 것은 이자람이 아니라 이자람의 제자 김소진이었다. 2009 사천가는 이자람, 김소진, 이승희 3명의 소리꾼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하는데 이날은 김소진이 공연하는 날이었다. 예매할때 확인을 했어야하는데,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도 잠시였고, 소리꾼 김소진은 판소리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듬뿍 선사하면서 우리를 사천가 속으로 몰입시켰다.


2009 사천가는 베르톨트 브래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현대적인 감각의 재구성한 창작 판소리 작품이다. 줄거리를 잠깐 보면, 사천에 세명의 신이 내려와 착한 사람을 찾는다. 여기에 순덕이라는 여인이 착한 사람으로 선택되지만, 순덕은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점점 착하게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급기야는 착하게 살기 위해서 악하게 살아야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되며, 이런 모순된 순덕의 상황을 통해서 현실 사회를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다. 


원래 판소리는 저잣거리에서 양반사회를 조롱하고 풍자했던 장르가 아니었던가? 사천가는 현대적인 문법으로 바뀐 창작 판소리 극이었지만, 이런 판소리의 고유한 특징인 풍자와 조롱 비꼼의 미학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공연 중에 " 국민소득 이만불이지만 배고픈 것은 여전하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도 내 몸 뉘일 곳은 없다" 고 이야기하는 순덕의 외침은 지금 상황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져, 입에서 저절로 "얼씨구"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런식으로 소리꾼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호응하면서 소리꾼과 관객의 호흡이 저절로 이어졌다. 소리꾼과 관객이 주거니 받거니 호흡하는 것이 판소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판소리 공연을 보면서 독특하게 보였던 또 다른 점은 소리꾼 혼자서 극을 이끌어 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풍성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다. 소리꾼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진 부분인데, 소리꾼은 소리를 잘해야함은 기본이고, 다양한 인물에게 독특한 개성들을 부여할 수 있는 연기력이 뒷받침 되어야하고,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무대 위의 카리스마도 필요해보였다. 아울러 뒤를 받쳐주는 악단과의 호흡을 맞추는 능력도 중요해보였고. 이날 공연을 한 소리꾼 김소진은 이런 역할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두시간여의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20살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노련미도 느껴졌고. 특히 그 나이대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을 캐릭터들을 꽤 멋들어지게 연기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세명의 신"을 연기한 율동배우들은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베이스 기타와 퍼커션, 북치는 고수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의 악단도 훌륭한 연주로 공연을 뒤를 받쳤고, 종종 조연으로 극에 직접 뛰어들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등장인물들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부여해주는 도구로 베이스 기타와 퍼커션을 사용한 것도 현대적인 느낌을 줬다. 이런 식으로 락 뮤지컬처럼 락 판소리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2009 사천가"는 판소리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톡톡튀는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까지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낸 이자람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판소리의 현대화를 위한 그녀와 젊은 소리꾼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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