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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아빠는 육아휴직 중

2017.12.24. 산타는 없다.

내일은 1년 중에 현서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인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과연 무엇일까?" 현서가 매년 이맘때마다 했던 행복한 고민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 고민과 더블어 "과연 산타는 있는가? 아무리 봐도 선물은 산타가 아니라 아빠가 주는 것 같다. 산타=아빠 아닌가?"라는 고민을 더 크게 하고 있다. 아마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가 아니라 아빠나 엄마가 사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겠지.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이미 한 99%는 산타=아빠라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이고, 지금은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현서가 며칠 전에 엄마에게 집에 있는 포장지를 보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포장지의 일치 여부로 산타=아빠를 확인하려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녀석 제법이군.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현서는 나름대로 이 고민을 진지하게 한 모양인데, 어제 저녁 현서가 들려준 산타=아빠라는 추론을 듣고 나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몇 달전부터 현서가 받고 싶어했던 선물 1순위는 "스캔 엑스 건"이었다. 장난감 총의 한 종류인데, 색시와 나는 아이에게 폭력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총, 칼 종류의 장난감은 사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현서에게 설명해주면서 "총, 칼은 안돼"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그래도 현서의 크리스마스 선물 1순위는 "스캔 엑스 건"이었다.


며칠 전부터는 받고 싶은 선물이 레고 시리즈 중 "헬리 케리어"로 바뀌었다. "레고 헬리 케리어"는 현서보다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제품인데, 높은 가격으로 인해서 "그림의 떡"인 제품이었다. 레고 매장에 갈 때마다 현서에게 '이건 아빠가 갖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라고 이야기했던 제품이었다. 현서가 헬리 케리어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을 때 좀 뜬금없다 싶었다.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줄 수준의 가격대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현서가 받고 싶은 선물은 "포켓몬스터 카드 세트"다. 그리고 내가 현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 것도 바로 이 "포켓몬스터 카드 세트"였다. 1순위인 "스캔 엑스 건"이나 2순위인 "헬리 케리어"를 위와 같은 이유로 제외하면 현서가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현서가 큰 그림이 작동한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현서가 선물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아빠. 내가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스캔 엑스 건, 레고 헬리케리어, 포켓몬스터 카드인데, 만약에 아빠가 산타라면 선물은 포켓몬스터 카드일꺼야."

현서의 말을 듣는 순간, 정곡을 찔린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벽장에 숨겨둔 포켓몬스터 카드 세트를 봤을까?' 당황한 모습을 애써 감추면서 물었다.

"현서야. 왜 그렇게 생각해?"

"만약에 산타가 선물을 준다면 내가 가장 받고 싶어하는 스캔 엑스 건을 주겠지. 하지만 아빠가 산타라면 스캔 엑스건은 총,칼이니까 안사줄테고, 헬리 케리어는 비싸서 안사줄거니까, 헬리 케리어는 사실 기대도 않했어. 그러니까 선물은 포켓몬스터 카드겠지."

그동안 장난감에 대해서 아빠, 엄마가 했던 말들을 기억했다가 그걸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렸단 말이지. 거기에 헬리 케리어로 페이크까지 적절하게 섞어주면서. 하하. 우와 이 논리 정연함. 나는 아들의 적절한 추론에 뭐라고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어색하게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아들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빠가 졌다. 완벽한 패배네. 이제 내일 아침 선물을 보면 산타는 아빠였다는 확신을 가지겠구나. 


메리 크리스마스다. 사랑하는 현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