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집에만 틀어 박혀있었다. 겨울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었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방에만 쳐박혀서 겨울은 다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바람도 쐴겸 겨우내 찌들었던 정신도 추수를 겸 해서 가까운 곳에 당일치기라도 갔다 오기로 했다.
한시간 반 정도 차를 달려 신륵사에 도착했다. 색시가 10년 전에 왔을때는 비포장 도로에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들어갔다고 했는데 지금은 길도 잘 닦여있고 주차장도 완비되어있었고 음식점들도 꽤 많이 들어서있었다. 여주 도자기 축제와 신륵사를 묶어서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여주군의 노력이 엿보였다.
남한강을 끼고 세워진 신륵사는 대부분의 고사찰들이 그러하듯이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줬다. 주중이기도 했고, 며칠전 내린 눈이 덮여있어서 더욱 고즈넉한 느낌을 주었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차가운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겨우내 집에서만 둥굴거리던 나는 그런 찬 강바람이 싫지 않았다.
한 시간정도 신륵사를 둘러보았다. 예전에 사찰이나 고궁에 가면 별다른 감흥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그냥 옛날 건물이군.조용해서 좋네..뭐 이정도 였는데, 지금은 역사교육을 전공한 색시가 옆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 신륵사 조사당의 건물 양식이라든지, 지붕양식부터 시작해서 부도의 모습, 석탑의 형태 등등에 대해서 색시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붕의 기와하나도 석탑의 돌하나도 그냥 놓여진 것이 아니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면서 문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신륵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입구에 환경단체에서 내건 대운하 건설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색시가 신륵사를 추천한 것에는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다. 남한강변에 세워진 신륵사는 만약 대운하 공사가 시작된다면 일정부분 파손될 수 밖에 없다. 강의 양쪽 옆을 선박 운항에 맞게 고쳐야한다면 남한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신륵사의 팔각정이나 다층 전탑은 자리를 내줘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강변의 멋드러지고 운치있는 기암 절벽도 콘크리트로 떡칠이 될테고 말이다. 색시는 신륵사가 그런 꼴을 겪기전에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두자고 했다.
대운하가 건설이 예정된 지역에는 신륵사뿐만 아니라 중원 고구려비를 포함하여 국보, 보물 72점과 발굴 조사해야하는 매장문화재가 177곳 정도 된다고 한다. 대운하 공사로 인해 이런 문화재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 청개천을 복원할때 이미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걱정이 더 된다.
오랫만에 바람쐐러 나와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차분한 마음을 얻어갈 수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 신륵사 다층 전탑.
신륵사 다층 전탑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이다
기단부에 방향을 표시하는 동,서,남,북이 적혔있었다.
탑의 옆면에 세겨져있는 당초문과 연주문
남한강 쪽에서 바라본 전탑의 모습
신륵사 정면으로 탁트인 남한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이 겨우내 찌들었던 것들을 날려보낸 느낌이었다.
사진이 허접해서 멋드러진 남한강의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이럴때면 사진을 좀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꼭 하게된다.
사진이 작아서 잘 안보이지만 강위에 철새들이 떠있었다.
신륵사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풍경. 멀리 보인는 아파트 단지가 영 거슬린다.
- 신륵사 대장각기비
신륵사에 대장각을 새운 내력을 적은 비.
- 신륵사 다층석탑
조사당 앞에 서 있는 다층 석탑. 우리나라 석탑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져있는데 이탑은 특이하게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다층 석탑 상층 기단에 세겨진 용과 구름 조각
다층 석탑 상층 기단에 세겨진 용과 구름 조각(2)
절의 중앙에 있는 법당 극락보전. 조선 숙종때 다시 지어지고 정조때 중수되었다고 한다.
신륵사 보존제자 석종비. - 고려말 승려 보존제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
신륵사 보존제자 석종 - 고려 말기 공민왕의 왕사였던 승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부도.
신륵사 보존제자 석종앞 석등 - 고려 후기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무덤 앞에 놓이는 장명등의 선구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작은 규모의 건축물이지만 공포의 형태와 가구수법이 특이하고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외관을 가지고 있어 조선 초기의 중요한 건출물이라고 한다.
신륵사 입구에 걸려있던 대운하 건설 반대 현수막. 아이러니하게도 여주시내에서는 "대운하만이 여주가 살길이다." 라는 현수막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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