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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도 여행을 다녀오다.(2월 23~25)

사는 이야기/여행

by 폭주천사 2007. 3. 2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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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에 색시와 함께 2박 3일 동안 강진-해남-보길도-보성 코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갔다와서 나름의 여행기를 써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쓴다.



첫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있어서 12시 쯤에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아침에 출발하지 못하고 12시에 출발한 것이 여행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 오전을 날린 덕분에 2박3일 참 강행군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톨게이트에서 나와 강진으로 향했다. 목포 톨게이트를 나왔을때가 이미 4시가 넘어있어서 무어인가 다른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결국 강진의 다산초당만 들르기로 했다. 다산 초당 입구에는 다산 유물관이 있어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다산의 일대기를 밀랍인형으로 꾸며놓은 것도 있었고 500여권에 달하는 저술중에 목민심서 같이 대표적인 저술들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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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유물관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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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3부작 중 하나. 목민심서>


다산 유물관을 나와 멋진 오솔길을 지나 다산 초당에 들어섰다. 다산 초당까지 가는 길은 소나무와 백일홍 대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장관이었다.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여기저기 떨어져있었고 바람이 불때마다 대나무들이 쏴아,쏴아하는 소리를 내며 소나무의 솔향들을 사방에 전달하고 있었다. 다산 초당까지 올라가는 길은 산책로가 전혀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다산 정약용이 산책하던 길을 기리기 위해 일부러 정비를 하지 않고 예전 산책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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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박물관에서 다산 초당으로 올라가는 길. 이곳을 지나면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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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은 1930년대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고>


10분여정도 올라가니 다산 초당이 나왔다. 요즘 모 카드 광고에서 배경으로 쓰였던 바로 그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다산 정약용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개혁을 고민하면서 저술에 몰두했던 바로 그곳이다.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다산 초당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다산이 직접 심었다는 백일홍들이 산책로와 마찬가지로 흐드러지게 피어 운치를 더했다. 초당 오른쪽으로 천일각에 가면 바로 밑에 펼쳐진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랜 유배생활동안 가족들을 그리워했던 다산이 이곳에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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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에서 내려다본 강진만>



다산 초당을 나와서 두번째 목적지인 두륜산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어두워져서 숙소를 잡고 일박을 하기로 했다. 근처에 괜찮은 여관들을 알아가지고 갔었는데 어두워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대흥사 앞에 유스 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저렴하고 깔끔한 숙소였는데 단체 관광객들이랑 같은 층을 쓰는 바람에 좀 밤에 좀 시끄러웠다. 저녁은 밑에 해남식당에서 백반정식을 먹었는데, 전라도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끝없이 펼쳐지는 반찬들에서 풍성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날. 7시 30분에 체크아웃을 한 우리는 바로 대흥사로 향했다.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아무도 밟지않은 길을 걷는 것이 참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새벽에 돌아다니기는 너무 추웠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덜덜 떨면서 대흥사를 둘러봐야했다. 절 입구까지 가는 길이 숲으로 우거저 운치가 있었다. 아직 사람의 인적이 드문 시간이었는지라 청솔모나 딱다구리 같은 동물들도 꽤 가까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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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로 향하는 산책로>



대흥사에는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이곳에 있었으며 임진왜란때는 승군총진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대흥사 입구에는 서산대사 부도가 있고 대흥사 내부에 서산대사유물관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천불전, 대웅보전, 표충사등을 둘러보고 나와 근처에서 아침 식사로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식당의 할머니께서 우리가 첫 손님이라며 즉석에서 밥을 지어주셔서 따뜻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추위에 떨었던 몸을 해장국으로 녹이고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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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에 있는 서산대사 부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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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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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대웅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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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응진전 삼층석탑>


두륜산 케이블 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라고 했다. 역사가 공사중이라 어수선했는데 케이블 카 운영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약 20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을 올랐다. 케이블 카에서는 발밑의 두륜산의 정경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다도해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에 따르면, 진도 완도는 물론이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했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두륜산 정상은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다. 하지만 경치는 아주 멋졌고 연신 카메라를 눌러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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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유스호스텔. 1박을 한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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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지에도 소개가 된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지형.역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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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의 종착역. 위로 고계봉까지 가는 등산로가 이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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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봉에서 내려다본 전경.멀리 다도해가 보인다>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해남 땅끝 마을로 진로를 잡았다. 땅끝마을에서 보길도에 들어가는 것이 오늘의 여정이었다. 땅끝마을에 도착해서 전망대를 보러갔다. 전망대에는 정상까지 모노레일을 운행중이었는데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너무 차안에만 있어서 몸이 찌뿌둥하기도 했고 바다를 끼고 나있는 산책로가 멋져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침과는 달리 햇살도 따사로웠다. 바다를 끼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중간에 초소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경기가 아주 멋졌다. 역시 사진 찍고 바다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전망대 정상까지가 의외로 멀었고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라 힘들기도 했다.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은 포기. 중간에 방향을 틀어 땅끝 탑을 보고 돌아와다. 혹시 땅끝 전망대에 가실 분이 있다면 올라갈때는 모노레일로 올라가고 내려올때는 걸어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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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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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위치를 나타내는 글귀.그런데 위에 낙서가 더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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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길도에 들어갈 차례였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1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점심은 보길도에서 먹기로 하고 차를 싣고 배에 올랐다. 땅끝에서 보길도까지 약 1시간 거리였다. 생각에는 난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배타는 재미를 만끽하고, 타이타닉도 좀 찍어보려고 했는데 그런 짓 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결국은 포기. 아침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결국 선실에서 도착할때까지 골아떨어졌다.

보길도에 도착해서 근처 횟집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보길도에서 1박을 할 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지막 배시간에 맞춰나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보길도 전체를 둘러보는 것은 포기.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예송리 흑자갈 해변, 송시열 글쓴바위등만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들른 곳은 고산 윤선도가 세운 세연정이었다. 윤선도는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려는데 이곳 산수에 반해 세연정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세연정은 우리나라 정원중에서도 독보적인 가치가 있는 곳으로 고산 윤선도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투암, 흑약암, 회수담 등등을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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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에는 동백이 멋드러지게 피어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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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세연정 다음으로 들른 곳은 예송리 해수욕장. 천연의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으로 까만색 자갈들이 펼쳐진 멋진 곳이었다. 겨울 바다라서 조금은 쓸쓸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런 것이 바로 겨울 바다의 로망이 아닐까? 파도와 달리기도 해보고, 예쁜 조약돌도 찾다보니 어렸을때 여름에 해수욕하던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몸담가본 것이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안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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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의 예송리 해수욕장 흑자갈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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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송시열 글씐바위였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송시열이 폭풍을 만나 이곳에 임시에 배를 쉬게 했는데 그틈을 못참고 여기에다 시를 적었다고 한다. 대략 자신의 신세한탄과 임금에 대한 충절을 노래했다고 하네. 적기는 송시열이 적었을 것인데 이걸 바위에다 새긴 사람은 누구였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탁본이 있어서인지 글주변이 먹물때문에 얼룩이 많이 져있었다. 앞으로는 관리가 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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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글씐바위.뭐 쓰기는 송시열이 쓰고 새기기는 다른 사람이 새기지 않았을까>


송시열 글씐바위까지 둘러보고 다시 땅끝마을로 나오는 배에 몸을 실었다. 완도로 나갈까도 생각했는데 다음 목적지가 보성차밭인지라 더 가까운 쪽을 택하게 되었다. 땅끝마을로 나오니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열심히 차를 몰아 보성에 도착했을때 이미 8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밭에 가까운 곳에 있는 골망태팬션에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차의 고장 보성에 왔으니 녹차먹인 돼지고기 녹돈을 먹기로 했다. 나는 밥은 대충먹자는 주의인데 우리 색시는 여행을 가면 그곳에 대표음식들을 먹어봐야한다 주의여서 이렇게 결정했다. 기름기가 적은 녹돈에다 잎새주를 한잔하니 피곤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3일째. 역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채크 아웃을 하고 보성차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근처에 밥 먹을 곳이 없었다. 근처에도 차파는 곳은 많아도 밥파는 곳은 없었다. 차에서 내려 아침먹을 곳을 물어봐도 이근처에는 밥 먹을 곳 없다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결국 쵸코파이 한상자 사가지고 보상차밭으로 출발.

그동안 광고나 영화등에서 많이 봐왔지만 보성차밭을 직접 온 것은 처음이었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산책로를 지나 보성차밭 입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아침을 해결 할 수 있었는데 매표소 옆에 식당이 있었다. 아침을 거르고 온 사람들이 많은지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녹차를 이용한 수제비나 곰탕, 비빔밥등등을 팔고 있었다. 색시랑 둘이 비빔밥이랑 곰탕 한그릇씩 먹고 녹차밭을 향해 출발.

녹차밭은 그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꼭대기에서 본 멋진 경치에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여긴 구구절절 말이 필요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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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밭을 둘러보고 쇼핑을 잠깐했다. 원래 여행가서는 아무것도 안사는 것이 신조인데. 보성 녹차밭에 왔서 그냥 갈 수는 없으니까. 

원래 계획으로는 보성녹차밭까지 둘러보는 것이 마지막 여정이었는데, 시간도 좀 널널하고 하여 집에 가는 길에 운주사에 들르기로 했다. 운주사는 특이한 석탑들이 많기로 유명한 사찰. 입구에서부터 9층석탑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뒤로 몇 개의 7층 석탑과 5층석탑 등등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색시가 역사교육 전공이기 때문에 이런 사찰에 오면 진가를 발휘한다. 내가 보기엔 그냥 석탑인데 색시의 설명을 들으면 "아~~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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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입구에 9층 석탑>


운주사의 원형 다층 석탑은 운주사의 많은 탑들중에서도 가장 특이함을 뽐내는 탑이었다. 옥개석이 각진 것이 일반적인데 이 원형탑은 특이했다. 고려탑이 원래 정형에서 벗어나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너무 튀는 데. 이런 원형 다층 석탑은 운주사에만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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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다층 석탑>


운주사 왼쪽 길을 통해 올라가면 와블과 칠성바위도 볼 수 있다. 와블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는데 10미터가 넘는 큰 불상이었다. 고려시대 불상답게 비례가 안맞는 모습이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신랑 신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 색시의 설명에 의하면 손가락으로 인을 맺고 있는 모습으로 보건데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이라고 했다.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배치가 되어 있는데 민속신앙이 불교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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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


운주사 대웅전 뒤에도 마애여래 좌상이나 공사바위, 원형구형탑등의 유적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공사바위에 올라가면 운주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도선대사가 여기에 앉아서 운주사 천불 천탑의 공사를 감독했다고 하여 공사바위라고 불린다고 한다. 공사바위에서 보면 운주사는 커다란 배모양을 하고 있다. 운주사의 주는 혹시 배 주(舟) 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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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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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바위에서 내려다본 운주사 전경>


운주사까지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2박 3일의 남도 여행이 모두 끝났다. 약간의 빠듯한 여행이었지만 그 덕분에 더 부지런하게 돌아다닌 것 같다. 두륜산 등산이나 완도를 둘러보는 것등 처음에 계획했던 여정을 포기하게 된 것은 아쉬웠지만 이런 아쉬움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새해 첫날은 아니었지만 땅끝에서 한 해의 다짐을 다질 수도 있었고 다니는 곳곳에서 전라도의 인심을 듬뿍 누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운전면허가 없는 관계로 우리 색시가 운전하는데 너무 고생을 많이했다. 이 여행을 계기로 내가 운전면허를 따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다음 여행때는 아마도 우리 색시가 운전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색시 고생했고 정말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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