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 숙제였던 사랑니 발치를 했다.
왼쪽 아래 사랑니가 위에 포스터처럼 옆으로 누워서 반쯤 매복되어 있는데, 식사 때마다 여기 사이에 음식물이 꼈다. 여기는 음식물이 끼면 양치를 해도 안빠질 때가 많고, 보통 이쑤시개로도 제거가 불가능한 치석의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이다. 뒤가 구부러진 치실 이쑤시개를 이용해야 그나마 낀 음식물들을 빼낼 수가 있는데,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염증이 생기고 붓기도 해서 치과에서도 발치를 권했었다. 하지만, 무서워서 미루고 있었다. (치과가 무서운 것은 나이에 상관없는 것인지라..)
하지만 휴직 기간에 빼기는 해야할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치과 예약을 잡았다. 예약을 잡으며 상담을 할 때 치과 선생님이 한 이야기들. '사랑니가 옆으로 누워 있어서 수술 발치를 해야한다.', '나이가 들면 뼈가 굳어서 수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수술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등등. 겁이 많이 나고 주눅이 들었다.
드디어 사랑니 발치일.
도살장 끌려가는 기분으로 치과로 향했다. 수술대에 누워서 위, 아래 입 안쪽에 마취를 하고 수술 시작. 마취를 해서 그런지 감각도 없고, 아픔도 느껴지질 않았다. 다행이다. 정상적으로 난 위쪽 사랑니는 한 방에 뽑힌 것 같다. 빠지는 느낌도 안들었다.
문제는 아래 옆으로 누운 매복 사랑니.
아마도 치아를 조각조각 쪼개서 빼내는 것 같았다. 전기톱 같은 기구로 치아를 갈아내는 느낌과 펜치같은 기구로 치아를 잡아 빼는 느낌이 몇 번이나 번갈아서 느껴졌다. 그런데 치아가 잘 안빠지는지 펜치질이 자주 삑사리가 났다. 펜치에 가해지는 의사선생님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갈고, 뽑고를 반복했고, 의사선생님도 힘든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마취 덕분에 통증은 없어서 다행인데, 계속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턱관절과 관자놀이 쪽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뿌리가 깊어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의사선생님이 힘들어하면서 한마디 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갈고 뽑고 씨름을 하더니 결국엔 마지막 조각까지 뽑아내고 상처를 묶었다. 시계를 보니 수술 시작하고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1시간 정도 걸린다더니...옆을 보니 피범벅이 되어 조각조각난 사랑니가 뒹굴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주의 사항을 들었다. '수술 부위에 끼워진 거즈는 두시간 정도 물고 있을 것', '피와 침이 많이 나올텐데 밷지 말고 모두 삼킬 것', '술, 담배 금지' 등등.
약처방 받고 집에 와서 조금 지나니까 마취가 풀리고 서서히 고통이 찾아왔다. 수술 전에 찾아본 사랑니 발치 후기들을 보면, 마취가 풀리는 순간 지옥문이 열린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수술한 부위가 약간 뻐근하고 불편한 정도. 얼음 찜질을 주기적으로 해주고 처방받은 약을 제 때 먹었더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다만 입맛이 없어서 식사는 못했다.
오늘이 이틀째인데, 지금은 수술부위가 살짝 부은 것을 제외하면 큰 불편함은 없다. 이빨 두개가 있다가 빠져나간 공간이 좀 횡해서 어색하다. 실밥을 푸는 다음 주 금요일까지만 조심해서 관리하면 큰 문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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