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이면 우리집 첫째 고양이 콕이가 5살이 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녀석이 우리 부부와 인연을 맺은지 5년째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그래서 오늘은 콕이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5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화창한 주말이었죠. 여자친구(지금은 색시가 되었죠.^^)와 저는 근처 공원으로 배드민턴을 치러 집을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밑에 층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죠. 현관에 내려가 보니 지층에서 한 아주머니가 박스를 들고 나오시는데 그 울음소리는 그 박스안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들여다보니 눈도 못뜬 새끼 고양이가 엄마를 찾는지 힘겹게 울고 있더군요.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지층 창고에서 새끼 고양이가 이렇게 운게 이틀정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미가 사고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버리고 간 것인지 새끼냥이는 이틀째 혼자 울고 있었던 것이었죠. 아주머니는 불쌍하긴 하지만 시끄러워서 어쩔 수 없다며 고양이가 담겨진 박스를 쓰레기통 옆에 두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희는 배드민턴 치러가는 것은 뒤로 미룬채 박스에서 계속 울어대는 녀석을 내려다 봤습니다. "이녀석 이대로 두면 죽을텐데..어쩌지" 하면서 말이죠. 걱정을 하면서도 쉽게 녀석을 어쩌지 못했던 것은 저희 둘에게 고양이에 관한 상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때는 색시와 교제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장미빛이었던 시기죠. 하늘에 별도 달도 따다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가장 큰 시기이기도 하고요. 색시를 감동시킬 깜짝 선물을 찾던 저는 색시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새끼 고양이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고 해서는 안될 일이죠. 만약 지금 옆에 친구가 그런다면 싸워서라도 뜯어말릴 일이지만, 그때는 무지했고 무책임했었습니다.
색시에게 선물한 고양이 이름은 "미야" 였습니다. 애교도 많고 성격도 활달하고 사람도 잘 따르는 귀염성 있는 녀석이었죠. "미야"를 품에 안고 좋아하던 색시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문제는 저희 둘다 고양이를 기를 현실적인 조건도 마음의 준비도 안되어있다는 것이었죠. 고양이에게 뭘 먹여야하는지, 대소변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털관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예방접종은 언제 해야하는지 등등, 알지도 못했고 알 생각도 않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식들이었지만 저희는 "그냥 고양이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크는 것 아냐?" 라고 둘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양쪽 집에서 고양이 입양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를 안받은 것이었죠. 집안 식구들은 고양이를 그렇게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구요.
그렇게 미야는 양쪽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지내다가 1년도 못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미야가 죽던 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미야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은 전적으로 저희 잘못이었습니다. 입양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괜한 욕심으로 미야만 목숨을 잃었죠. 미야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미야는 저희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큰 상처로 남았죠.
이렇게 미야에게 큰 상처를 줬던 기억이 있는 저희들이었기 때문에 박스에서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선뜻 입양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미야의 전철을 밟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죠.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죽을 텐데, 그렇다고 입양해서 기를 자신은 없고..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빗방물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박스안에서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었죠. 그대로 두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비라도 피하게 하자란 생각으로 새끼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여왔습니다. "일단 이녀석 살려놓고 생각은 나중에 하자." 하고 말이죠.
먼저 이녀석 상태가 어떤지 동물병원부터 데려갔습니다. 수의사는 눈도 못뜬 새끼 고양이의 상태를 보더니, 이런 식으로 일찍 어미에게서 떨어진 새끼는 열에 아홉은 얼마못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고 했죠. 그 소리를 듣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미야에 이어서 이녀석도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일단 동물병원에서 챙겨준 초유성분이 든 분유(고양이 초유성분 분유는 없어서 강아지 용을 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와 젖병 등등을 챙겨서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그래도 일단 해보는데까진 해보자는 마음으로 녀석에게 메달렸습니다. 지난 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다음 카페 "냥이네"를 비롯하여 인터넷을 통해서 필요한 자료들과 기초지식들을 구했고, 조언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젖병으로 분유를 제대로 먹이는 방법도 배웠고, 먹인 후에는 등을 쓸어줘 소화를 도와줘야하는 것도, 따뜻한 물로 적신 휴지로 항문을 자극해서 배변을 유도해줘야한다는 것도 배웠죠. 그렇게 며칠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녀석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새끼 고양이는 그후로 며칠간을 끄떡없이 살아줬습니다. 녀석의 살려는 의지가 열에 아홉은 죽을거라던 확률을 이겨냈죠.
녀석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콕이"라는 이름도 생겼습니다. "콕이" 라는 이름은 배드민턴을 치러가는 길에 입양했다고 해서 배드민턴 공인 "셔틀콕"에서 따온 이름이죠.
그렇게 콕이는 별다른 잔병치레없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5년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은 7kg이 넘는 거묘가 되었죠. 그동안 우리 커플은 결혼을 했고 두번의 이사를 했지만 콕이는 변함없이 우리 곁에서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콕이는 우리 커플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소중한 존재입니다. 콕이에게 사랑을 쏟으면서 우리는 "미야"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죠. 저는 가끔씩 콕이는 미야가 하늘나라에서 맺어준 인연이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그날 갑자기 맑은 하늘에 비가 내려서 콕이을 입양하게 된 것도 미야가 한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콕이가 앞으로 몇년을 우리와 함께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고양이 수명은 평균적으로 10년이라고 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수치가 이니니까요. 하지만 언제가 되었던 시간이 흘러흘러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날까지 콕이가 우리 가족이란 사실은 변하지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