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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가 선정한 NBA 역사상 최강의 덩커들.

농구 이야기/NBA

by 폭주천사 2008. 2. 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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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잇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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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의 믿음직한 포스트맨 드와잇 하워드 이제 샤킬 오닐을 제치고 NBA에서 가장 많은 덩크를 성공시키는 선수가 되었다. 지난 시즌 하워드가 성공시킨 254개의 덩크슛(리그 1위)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올해 덩크슛 대회에서 하워드가 보여준 슈퍼맨 덩크는 보기힘든 만점짜리 덩크였고, 하워드는 24년간의 올스타 덩크슛 대회 역사에서 센터로는 최초로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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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으로 뛰어 오르면서 혀를 내미는 조던의 모습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명예의 전당급 커리를 보내면서 조던의 에어니스(Airness)는 억누를 수 없는 하늘을 나는 능력의 기준을 만들어냈으며, 그의 무한한 창조력과 경쟁심은 젊은 세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조던은 올스타 덩크 대회에 세번 출전하여 7번의 50점 만점 덩크를 보여줬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빈스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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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카터는 노스케롤라이나 대학에서 3년동안 뛰는 동안 처음에는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카터는 2000년 덩크 대회에서 보여줬던 난생처음 보는 엘보우 덩크(elbow dunk)로 뛰어난 덩커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세계를 경악시킨 덩크는 몇 달 뒤 시드니 올림픽에서 터져나왔다. 카터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이른바 "le dunk de la mort("the dunk of death")라고 알려진, 7푸터 프레드릭 와이즈를 뛰어넘는 놀라운 덩크를 성공시켰다.




줄리어스 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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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 기술에 있어서 혁신적으로 혁명적인 일을 해낸 선수는 마이클 조던만이 아니다. 자신의 시대에 지배적인 선수였던 어빙은 당시 연습에서조차 시도하지 않던 많은 동작들을 실제 경기에서 보여주며 공중에서 창조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끌어올렸다. 1976년 ABA 덩크 컨테스트에서 그가 최초로 보여준 자유투라인 덩크는 슬램덩크 진화의 분기점이 되었다.




도미닉 윌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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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득점원이자 상상을 뛰어넘는 덩커 도미닉 윌킨스는 두번의 슬램덩크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윌킨스는 마이클 조던과 맞붙었던 1988년 슬램덩크 대회(미디어에서 알리와 프레이져의 대결과 동급으로 평가했던)로 가장 많이 기억된다. 휴먼 하일라이트 필름 도미닉 윌킨스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윈드밀 덩크, 백보드를 이용한 원핸드 토마호크를 성공시키면서 덩크대회가 열렸던 시카고 관중들을 놀라게했다. 하지만 윌킨스는 파이널 라운드에서 홈타운 시카고의 마이클 조던에게 147-145 로 아쉽게 우승 트로피를 넘겨줬다.




코비 브라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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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8살이었던 필라델피아 출신의 코비 브라이언트는 1997년 슬램덩크 대회에서 크리스 카를 꺾고 역대 최연소 덩크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대회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프로 선수로서 그리고 리그의 손꼽히는 덩크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탄탄히하는 큰 도움이 되었다.




제이슨 리차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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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이 슬램덩크 대회의 타당성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을때 다이나믹한 리차드슨은 노후된 것처럼 보였던 슬램덩크 대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6-6의 가드 리차드슨은 혁신적인 덩크들로 2002년과 2003년 연속으로 슬램덩크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두 번의 타이틀을 따낸 4번째 선수가 되었다. 사실 리차드슨은 슬램덩크 대회에서 3번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프레드 존스에게 우승트로피를 넘겨줬던 2004년 슬램덩크 대회에서 리차드슨의 패배는 많은 논란을 가져왔었다.




르브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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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킹 제임스는 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덩크 아티스트 중에 한명으로 꼽혀왔다. 실제로 제임스는 지난 시즌에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드라이빙 덩크(36개)를 성공시킨 선수였다. 제임스의 드라이빙 덩크는 올해 올스타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제임스는 경기막판 125-125 동점을 깨트리는 덩크를 성공시키면서 동부의 놀라운 승리를 이끌었다.




숀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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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프는 1990년에 리그에서 가장 어린 선수로 NBA 에 발을 딛었다. 그리고 그의 익사이팅한 플레이스타일과 파괴적인 덩크들로 빠르게 시애틀 팬들을 사로잡았다. 레인맨 숀 켐프는 자신의 14년 커리어의 마지막을 체중과의 전쟁으로 소비했지만 전성기에 켐프보다 빛났던 선수는 많지 않았다.




데럴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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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럴 도킨스는 가장 화려했던 시대에 가장 화려한 개성을 자랑하던 선수중에 한 명이었다. 초콜렛 썬더, 데럴 도킨스는 인정사정 없는 덩크들과 자신이 붙여준 덩크이름들로 인해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얻은 선수였다. 이 기이한 빅맨은 자신의 덩크들에게 Go-Rilla, the In-Your-Face Disgrace, the Yo-Mama and the Spine-Chiller Supreme 등의 이름들은 붙였었다.




샤킬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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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스탯 전문가 하비 폴락이 덩크슛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20년동안,  the Big Aristotle 샤킬 오닐의 믿을 수 없는 3,852개의 덩크슛 갯수는 2위 데이빗 로빈슨의 1,654개를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미적감각을 중시하는 비평가들은 샤킬 오닐을 위대한 덩커에 포함시키기를 꺼려한다. 화려함이 없고 닥치고 덩크류인 샤킬 오닐의 덩크들은 창조력부분에서는 많은 점수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샤킬 오닐의 전성기에 그의 엄청난 파워를 맞상대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오닐은 루키 시즌에 덩크로 두개의 백보드를 박살내면서 전국방송을 지켜보던 농구팬들을 경악시켰다.




클라이드 드렉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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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프력과 느긋한 공중동작으로 "Clyde the Glide" 로 유명한 드렉슬러는 도미닉 윌킨스와 더블어 슬램 덩크 대회에 5번이나 참가한 유이한 선수이다. 드렉슬러는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1980년대 초반 휴스턴 대학을 3년 연속 파이널 포로 이끄는 동안 자신의 덩크에 대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래리 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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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NBA에서 첫 슬램 덩크 대회가 열리기 이전부터 낸스는 리그의 엘리트 덩커로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1984년 대회에서 피닉스의 포워드 낸스가 줄리어스 어빙을 꺾고나서야 그의 명성은 확실한 것이 되었다. 낸스는 리버스 잼과 공을 손에 완전히 감싸고서 성공시킨 덩크, 양손으로 두개의 농구공을 이용한 리버스 덩크로 덴버의 맥니콜스 아레나의 관중들을 흥분시키며 챔피언이 되었다.




데이빗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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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톰슨의 "스카이 워커(Skywalker)" 라는 별명은 그의 48인치에 달한다고 알려진 수직 점프능력때문에 붙여졌다. 톰슨은 노스케롤라이나 주립 시절 얼리웁 덩크로 명성을 날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데이빗 톰슨은 종종 얼리웁의 창시자로 오해를 받고 있다.




코니 호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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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을 향한 코니 호킨스의 악명높은 이야기에는 할렘 글로비트로터스, ABL의 피츠버그 렌스, ABA의 피츠버그 파이퍼스 그리고 자신의 프로 커리어 마지막 7시즌동안 몸담았던 3개의 다른 NBA팀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코니 호킨스의 전설은 그의 놀라운 덩크들이 브루클린을 주름잡았던 Bedford-Stuyvesant 코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거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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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동안 현대 NBA 선수의 프로토 타입으로 생각되고 있는 거스 존슨은 아이다호 대학시절 그의 달콤한 스타일의 플레이로 인해 "Honeycomb"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덩크를 주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선수들 중에 한 명이었으며 NBA 커리어동안 세 개의 백보드를 박살냈다.




피닉스 선즈 마스코트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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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동안 선즈의 아이콘 마스코트 고릴라는 피닉스 홈 경기 3쿼터와 4쿼터 사이에 재미있는 덩크들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피닉스 선즈의 고릴라가 Phillie Phanatic,  San Diego Chicken과 함께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 멤버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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