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i reward
With retirement looming, Kukoc deserves some praise
토니 쿠코치는 밀워키 벅스나 시카고 불스와 다시 계약을 할지 뜸을 들이고 있지만 6-11 포워드는 선수생활을 충분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듯하다.
지난 시즌 밀워키 벅스에서 평균 15.7분을 출전하면서 평균 4.9득점 2.3리바운드 2.1 어시스트를 기록한 조금 있으면 38살이 되는 노장 선수의 은퇴가 팀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쿠코치의 은퇴는 지난 20년간 우리가 보아왔던 가장 주목해야할 선수의 커리어 중에 하나가 끝나는 것이다.
쿠코치는 NBA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최초의 유럽출신 선수는 아니었다. 사루나스 마르시울리오니스, 드라젠 페트로비치, 블레이드 디바치는 쿠코치가 데뷔했던 1993년 이전에 이미 몇 시즌동안 자신들의 가치를 쌓아왔다. 그리고 쿠코치는 우리가 보아왔던 최고의 유럽출신선수도 아니다. MVP 후보인 덕 노비츠키라면 모를까.
다른 선수들과 구별지을 수 있는 쿠코치의 업적은 쿠코치가 국제농구 스타일의 플레이를 NBA에 적합하도록 완벽하게 이식했다는 점이다. 쿠코치는 NBA 무대에서 유럽스타일의 농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그의 팀 동료들과 감독들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이런 쿠코치의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조차도 어려움과 좌절을 거쳐서 이룩한 것이다.
유럽 스카우터 이비카 두칸에 의해서 발굴된 이후. 시카고 불스 GM 제리 크라우스는 1990년 2라운드에서 쿠코치를 뽑았고 쿠코치에 대한 권리를 이용하여 주목할 만한 일을 해냈다. 그 당시 불스는 챔피언 팀이 아니었고, 해외 스카우터들이 매직 존슨에 비교했던 이 선수에 대한 병적인 편애는 마이클 조던이나 스카티 피팬과 같은 당시 불스 선수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팀에서 크라우스의 역할에 이미 분노하고 있던 피펜과 조던은 크로아티와 펼쳤던 1992년 올림픽 결승에서 승리가 확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팀동료인 쿠코치에게 악착같은 수비를 펼치면서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
이런 상황은 1993년 10월 쿠코치가 시카고에 도착했을때도 변하지않았다. 쿠코치가 시카고에 도착한 것은 마이클 조던이 농구계에서 은퇴를 발표하기 며칠 전이었다. 조던이 은퇴를 발표하는 동안 리그 데뷔를 준비하던 쿠코치는 한켠에서 몰래 눈물을 떨궈야했다.
루키 시즌에 단 8경기만을 선발출전한 쿠코치는 여전히 이상한 선수였다. 그는 자신과 맞닥뜨린 상대팀 파워포워드들 보다 빨리 달렸고 베테랑 포인트 가드 보다도 코트비전이 좋아 보였다. 필 잭슨 감독이 그의 모든 무브에 대해서 반복해서 잔소리를 해댔지만 쿠코치는 통역상의 문제를 가장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해갔다. 쿠코치는 평균 24.1분을 출전하여 10.9득점 4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조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는 챔피언십을 차지했던 바로 전시즌보다 2승이 모자란 55승을 거뒀다.
플레이오프에서 비록 출전시간이 조금 줄어들었다. 쿠코치는 시간이 다 되어가면서 던진 20푸터를 성공시킴으로서 동부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여전히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쿠코치의 이 슛은 시카고 불스의 혼란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바로 전 공격에서 쿠코치의 어이없는 실수에 화가 나있던 피펜은 필 잭슨 감독이 쿠코치에게 마지막 슛을 주문하자 마지막 1.8초를 남기고 출전을 거부했다. 결국 시카고는 7차전에서 닉스에게 패하고 말았다.
다음 시즌에도 조던은 여전히 마이너리그에 있었다.그리고 스타팅 파워포워드 자리는 쿠코치의 것이었다. 쿠코치는 평균 31.7분을 출전하며 게임당 16득점을 기록했고 리바운드와 어시스트를 합쳐서 10개 정도를 기록했다. 그의 수비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다. 그리고 쿠코치는 아직도 NBA 라이프 스타일에 적응 중이었다. 경기전에 셀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와인이 포함된 7가지코스 식사를 했었던 생활방식을 바꿔야했다. 비록 불스가 나중에는 쿠코치가 건강한 식생활을 하도록 유도를 잘 했지만, 당시 시카고의 트레이너 칩 쉐이퍼는 작가 데이빗 할버스탐에게 쿠코치의 식사량이 4000 칼로리에 육박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 어려운 점은 다시 복귀한 마이클 조던과 함께 했던 1995년 올랜도와의 동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의 시카고의 플레이였다. 필 잭슨은 무조건 샤킬 오닐에게 더블팀을 갈 것을 지시했다. 다른 수비수들은 앤퍼니 하더웨이, 닉 앤더슨, 데니스 스캇 같은 슈터들을 수비해야했기 때문에 호레이스 그랜트는 18풋 점퍼 위치에서 오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랜트는 이런 거리의 슛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랜트의 공격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았고 불스는 오닐의 플레이나 오픈 삼점슛에 수비의 중점을 더 두었다. 그랜트는 자신에게 돌아온 슛 찬스를 꾸준히 성공시켰고, 오픈이 되는 그랜트를 로테이트 수비하지 못하는 쿠코치의 모습은 불스로 하여금 다음 오프시즌에 수비마인드로 무장한 데니스 로드맨을 영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쿠코치는 벤치멤버가 된 것이 기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평균 스탯을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효율성은 상승했고 결국 1995~96시즌 식스맨 어워드 수상으로 이어졌다. 쿠코치에게 있어서는 참 애매한 영광이었다. 그리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등부상으로 인해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일 기회를 날려버림으로써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비록 불스가 그 시즌과 그 다음 시즌에 챔피언십을 차지했지만 이번엔 발 부상이 쿠코치의 1997년 플레이오프를 방해했다. 그러나 1998년에 그는 건강했다. 그리고 인디애나와 동부결승 7차전에서 클러치 쇼를 보여주면서 불스의 파이널 행을 견인했다.
그때부터 쿠코치의 별은 조금씩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쿠코치는 1999년 평균 19득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해를 보내게된다. 그러나 이 시즌은 NBA 락아웃으로 인한 단축시즌이었고, 필 잭슨과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이 떠나버린 불스는 겨우 13승에 그치고 만다. 다음 시즌 쿠코치는 더 많은 계약을 제시하지만 결국 3팀이 연결된 트레이드를 통해 필라델피아로 보내진다.
다시 벤치 신세가 된 쿠코치는 수비와 앨런 아이버슨이 지배하는 필라델피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필라델피아가 파이널에 진출하던 시즌에 애틀란타로 트레이드 된다. 애틀란타에서 쿠코치는 2000~01시즌 막판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제이슨 테리와 픽 앤 롤도 쉽게 해냈고 또한 애틀란타 호크스의 공격을 조율했다. 그러나 그 다음시즌에 부상과 발전이 느린 팀 동료때문에 쿠코치의 능력은 더이상 빛을 보진 못한다.
비록 잦은 부상으로 인해 아웃 사이드에서 볼을 잡는 횟수나 돌파능력은 줄었지만 쿠코치는 자신과 함께 플로어에 있는 4명의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바스켓볼 IQ를 소유한 선수였다.그러나 컷을 해야하는 팀 동료들이 컷을 하지 않서나 기브-앤-고 플레이가 잘 안돌아갈 때, 일대일 플레이에 직면하여 볼움직임이 제한될 때 쿠코치는 좌절해야만했다. 쿠코치가 마지막 불꽃을 태운 시즌은 2002~03시즌 밀워키 벅스에서였다. 당시 벅스는 팀의 에이스 레이 앨런을 트레이드하고 조지 칼을 해임하면서 최악의 시즌을 보낼 때였다.
밀워키에서의 쿠코치는 거의 모든 어려움이 쳐해있었음에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는 최고의 선수들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장과 기동성을 갖춘 선수였다. 같은 타입의 선수를 찾기 어려운 선수이다. 쿠코치가 공격을 조율하면 그의 플레이는 눈에 띄었다. 항상 왼쪽으로 이동하고 고통스러운듯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항상 자신을 컨트롤 했고 실력과 품위를 갖췄다.
애틀란타에서 보여줬던 쿠코치의 실망스러운 모습도 여기서 끝이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쿠코치는 애틀란타 호크스처럼 주변 환경이 최상이 아니면 게임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유지된다면 아주 볼만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쿠코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터네셔널 스타일의 플레이도 NBA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런 쿠코치의 업적은 훗날 그의 3개의 챔피언 반지보다도 더욱 빛날 것이다. NBA 에 진출하는 외국인 선수들은 그에게 무수한 감사의 말을 남겨야할 것이고 미국에서 NBA를 보는 사람들도 전혀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를 보게해준 이 선수에게 많은 찬사를 보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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