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빈스 카터가 NBA의 미래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단축시즌으로 치뤄진 1998~99시즌. 루키였던 빈스 카터는 제이슨 윌리엄스와 더블어 센세이셔널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파업으로 인해 등돌렸던 농구팬들의 이목을 다시 코트위로 향하게 했다. 특히 빈스 카터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는 올스타전 슬램덩크 대회에서 "Half Man, Half Amazing" 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놀라운 덩크슛을 보여줬고, 이후 계속되는 시즌동안 입이 절로 벌어지는 놀라운 탄력과 득점력을 과시하면서 단숨에 NBA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몇 번의 부상을 당하며 운동능력을 많이 상실했고, 토론토에서 태업 의심을 받으며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 된 빈스 카터는 여전히 위력적인 득점원이긴 하지만 위상은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현재 리빌딩을 진행중인 뉴저지 네츠가 빈스 카터를 계속 데려갈지도 의문이고.
2008년 11월 21일 토론토 랩터스와 뉴저지 네츠의 경기는 그동안 이래저래 심난했던 빈스 카터 팬들에게 즐거움을 준 경기였을 것이다. 카터가 볼을 잡을때마다 야유를 퍼부어대는 토론토 팬들 앞에서 카터는 39득점 9리바운드 6어시트로 맹활약을 펼쳤다.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가는 동점 3점슛을 성공시켰고, 연장전에서는 앨리웁 덩크로 결승골을 성공시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빈스 카터의 팬이라면 고화질 경기로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었다.
뉴저지 네츠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 된 후 몇 시즌 동안 카터의 플레이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평균득점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점프슈터로 변신한 것 같은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는 전성기 카터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한숨이 나올정도였다.
하지만 제이슨 키드와 리차드 제퍼슨이 팀을 떠난 지금 카터는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면서 팀의 리더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경기에서 볼을 컨트롤하면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은 네츠의 포인트 가드들이 아니라 빈스 카터였다. 데빈 해리스는 아직 경기운영능력이 부족하고, 키언 둘링은 무늬만 1번이다보니 카터가 리딩을 주도하는 모습이었다.
득점력에서도 몇 시즌째 찾아보기 힘들었던 돌파에 의한 득점이 점퍼와 균형을 이룬 모습이었다. 비록 전성기처럼 운동능력을 이용한 파괴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수비수의 타이밍을 뺏는 노련함과 다양한 페이크로 랩터스 골밑을 꾸준하게 파줬다.
토론토가 무시무시한 화력을 발휘하며 전반전을 앞서나갈때 네츠에서 유일하게 득점을 해준 것도 빈스 카터였고, 3쿼터에 네츠의 추격을 이끈 것도 빈스 카터였다. 카터의 활약을 바탕으로 4쿼터 초반 데빈 해리스가 연속득점을 성공시키면서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지만 이후 4쿼터 후반과 연장전 역시 빈스 카터의 몫이었다. 특히 연장전에서는 이날 커리어 하이의 매활약을 펼친 크리스 보쉬를 수비하면서 토론토 랩터스의 전 프랜차이저와 현 프랜차이저의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모습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 경기는 정말로 빈스 카터의, 빈스 카터에 의한, 빈스 카터를 위한 경기였다.
요즘 포텐셜 폭발이라는 평가를 받는 데빈 해리스는 이날 경기에서 30득점 5어시스트 3스틸로 카터를 도와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닥치고 돌파가 이렇게 위력적인 선수는 토니 파커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매치업 상대였던 호세 칼데론이 발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순식간에 칼데론을 떨구고 핼프 수비가 미쳐 오기도 전에 득점을 성공시키는 해리스의 번개같은 무브에는 그냥 감탄만 나올뿐이었다. 슈팅이 좀 더 보완되고 리딩쪽에서 발전을 이룬다면 해리스도 차세대 포인트 가드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브룩 로페즈도 이날 경기에서 괜찮았다. 좋은 사이즈를 이용해서 골밑에서 자리 잡는 능력이 아주 좋았고, 골밑에서 훅슛을 이용하거나 백보드를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득점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볼을 잡은 이후에 슛까지 올라가는 연결동작이 많이 뻣뻣해보이긴 했다. 블로그 이웃분들에게 브룩 로페즈 뻣뻣하단 이야기를 들었을때 과연 어떻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기를 보니 자연스럽게 뻣뻣하네 란 생각이 들었다. 움직일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날 것 같았다.
토론토 랩터스
사실 경기가 랩터스의 승리로 끝났다면 이 경기는 크리스 보쉬의 커리어 하이 경기로 기억될 뻔했다. 보쉬는 이날 커리어 하이 42득점을 기록했고, 연장전 종료 직전 동점 삼점슛까지 성공시키면서 랩터스를 승리 직전까지 이끌었다. 물론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빈스 카터의 결승 덩크슛으로 승리는 놓쳤지만 이날 보쉬의 활약도 A+였다.
이날 보쉬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득점포를 퍼부었다. 이 첸리엔은 보쉬를 막다가 1쿼터 3파울을 당했고, 힘이 좋은 브룩 로페즈, 운동능력과 블록슛이 좋은 션 윌리엄스, 허슬플레이어 나헤라, 루키 라이언 앤더슨까지 보쉬를 봉쇄하기 위해서 총출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쉬의 페이스 업에 이은 무브는 이제 알고도 막지 못하는 경기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보쉬는 팀이 필요할때 그리고 클러치 상황에서 볼을 잡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줬다.네츠가 4쿼터에 경기를 뒤집고 랩터스가 힘이 떨어질 상황에서 보쉬는 연속득점으로 랩터스를 이끌며 경기를 계속 접전으로 유지했다. 보쉬도 슬슬 빅타임 스코어러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이미 빅타임 스코어러인지도.
호세 칼데론이 없을때와 있을때 랩터스의 경기력은 천지차이다. 26득점 15어시스트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칼데론의 정확한 슈팅과 클러치 상황에서의 대담함이었다. 어떻게 심장이 이렇게 강할 수가 있을까? 이거 좀 떼서 제프 그린한테 줬으면 좋겠다.
안드레아 바르냐니도 이날 커리어 하이 활약을 보여줬다. 29득점 10리바운드. 이날 경기에서는 간간히 포스트 업이나 칼데론과의 픽앤롤에 이은 득점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삼점슛만 던지는 빅맨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비에서도 꽤나 터프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대로 발전하면 바르냐니는 최악의 1번픽 후보에서는 빼도 될 것 같다.
반면에 저메인 오닐은 이날 경기력인 영 꽝이었다. 예전에 포스팅했던 "슛 좀 그만던져 팀" 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오닐인지라 유심히 봤는데 서드 아이님 말씀데로 점퍼 비중이 너무 높았다. 성공률은 떨어지고. 차라리 보쉬처럼 적극적으로 골밑으로 대쉬라도 하던가.
그리고 수비는 또 왜 이렇게 막장인지. 3쿼터에 네츠에게 추격을 허용한 것은 카터의 활약도 있었지만 오닐이 브룩 로페즈에게 골밑에서 연속으로 털렸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득점은 몰라도 수비, 리바운드, 블록슛등에서 오닐이 꽤 좋은 모습이었는데 이날은 이상하리만큼 무기력했다. 게다가 3쿼터엔 무릎부상까지 당해서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이래저래 안습이었던 저메인 오닐이었다.
개인적으로 토론토 경기는 참 재미잇게 보고 있다. 크리스 보쉬나 호세 칼데론의 경기력도 좋고, 유러피언 스타일의 패싱 게임이나 수준 높은 팀플레이도 맘에 들고 말이다. 동부에는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는데 토론토 랩터스로 갈아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