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대회 조별 예선 3번째 경기 필리핀전은 비록 69-56 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습니다. 필리핀에게 이런식으로 고전할 전력은 아니라고 보는데,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고생을 했네요. 일본과 스리랑카를 너무 쉽게 잡아서 방심을 한 것인지.
경기를 보면서 생각했던 대표팀의 문제점을 몇가지 적어봤습니다.
집중력 부재 - 일본전과 스리랑카전을 너무 쉽게 이겨서일까요? 필리핀전에서는 너무 급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대일 공격도 많았고, 노련한 주희정마저 무리하게 속공을 달리고 (하승진이 있는데 속공을 너무 달리더군요), 전체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레블링 바이얼레이션도 여러번 나왔고, 어이없는 스틸도 많이 당했죠. 턴오버에서도 13-10으로 더 많았고요. 백코트도 늦어서 속공 얻어맞고, 킁.
리바운드 - 누구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박스 아웃이 안됐습니다. 전체 리바운드는 47-41로 앞섰지만 공격리바운드를 14개나 헌납하면서 무수한 세컨찬스 포인트를 내줬구요.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수비 로테이션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말이죠. 수비를 아무리 잘해도 수비리바운드를 잡아내지 못하면 결국 수비는 실패죠. 필리핀의 3점슛과 슈팅 성공률이 형편없었음을 감안했을때 수비 리바운드만 잘 지켰어도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필리핀의 2:2에 대한 수비 - 필리핀은 스피드가 좋고 빠른 가드진과 삼점슛까지 가능한 슛거리를 가진 빅맨을 이용한 투맨게임이 공격에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필리핀에 대한 분석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대팀 빅맨 패네시에게 픽앤팝에 의한 3점슛을 연달아 얻어맞는 장면도 나왔고, 필리핀 가드들의 픽을 이용하나 돌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개인기를 앞세운 필리핀 가드들에게 전혀 압박을 주지 못했습니다. 장신에 파워가 좋고 개인기까지 갖춘 필리핀 가드들 위력적이더군요. 거기에다 필리핀 빅맨들이 스크린을 워낙 잘해줘서, 주희정이나 양동근이 막기에는 좀 힘겨워 보였습니다.
슈터들의 부진? 부재? - 허재 감독은 스리랑카전에서 슈터들의 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로테이션을 돌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슈터들의 슛감은 스리랑카전에서 폭발하고 리셋이 되었나보네요. 한국은 22개의 삼점슛을 던져서 달랑 4개 밖에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성공률 18.2%. 성공률보다 아쉬운 것은 삼점슛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22개의 삼점슛 중 패턴에 의해서 던지 삼점슛은 몇개 되지 않았습니다. 기억나는 장면은 이규섭이 스크린을 받아서 베이스라인 타고 왼쪽 코너에서 잡은 오픈 찬스. 또 하나는 김주성의 완벽한 스크린을 타고 양희종이 성공시킨 삼점슛이었죠. 그 외에는 무리한 슛이 많았습니다.
특히 방성윤의 1쿼터 두번의 삼점슛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수비수를 앞에 달고 무리하게 올라가는 성급한 슛들이었습니다. 1쿼터 초반 10여점차로 뒤지고 있던 필리핀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런 한국의 무리한 공격들이었죠. 경기뛰는 모습을 보니 방성윤은 아직 몸이 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수비에서도 자신의 마크맨을 따라가질 못하고, 공격에서도 움직임이 느리고. 방성윤의 폭발력은 인정합니다만 그런 몸상태로는 경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외곽에서 숨통을 못틔어주니까 하승진을 비롯한 골밑도 빡빡했습니다. 1쿼터에 하승진과 방성윤을 동시에 투입한 걸로 보아, 허재 감독도 내외곽의 조화를 통해서 점수차를 확 벌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삼점슛이 침묵하고 필리핀이 하승진에 대한 수비를 잘하면서 오히려 점수차가 좁혀졌죠.
하승진의 활용 - 수비에서 필리핀은 키는 작지만 덩치가 좋고 힘이 좋은 빅맨들을 하승진에서 1:1로 붙이고 하승진 턴할때 핼프를 가면서 앤드라인 쪽으로 모는 수비를 보여줬는데요, 이게 큰 효과를 봤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하승진이 높이와 힘을 이용해서 더블팀을 뚫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모습이었고, 골밑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다 3점슛까지 터지지 않았고요. 하승진이 막판에 골밑에 들어가길 포기하고 미들레인지 점퍼를 던지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오더군요.좀 더 과감하게 밀어부쳐서 몸싸움하고 자리를 잡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극성이 좀 부족해보여요.
공격에서는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떨어지는 하승진을 상대로 필리핀의 픽앤롤이나 픽앤팝 공격이 효과를 봤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필리핀의 2:2는 이날 경기에서 꽤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날 하승진은 15분 출전에 그쳤죠.
한국은 하승진이 뛸때 공격과 수비에서 무언가 보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쿼터에 김주성이 하승진과 시도하던 하이-로 공격같은 다양한 옵션이 필요해보여요.
필리핀전이 실망감을 주긴했습니다만, 조별예선에서 이런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B조에서 올라온 팀들과 경기를 치루며 개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요. 앞으로 쿠웨이트, 대만, 이란을 상대로 8강진출을 가리게 되는데, 필리핀전에서 나왔던 이런 문제점들을 잘 보강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