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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가넷. 미네소타 팀버울브즈의 모든 것이었던 선수.

농구 이야기/NBA

by 폭주천사 2007. 8. 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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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드래프트에서 팀버울브즈는 전체 5번으로 페러것 아카데미의 6-11 케빈 가넷을 뽑았다. 가넷은 1975년 대럴 도킨스와 빌 윌로비 이후 최초로 NBA에 진출한 고졸선수가 되었다. 가넷은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드, 르브론 제임스 같은 선수들의 NBA 직행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냈으며, 이 트랜드는 NBA가 2005년 드래프트에서 나이제한규정을 세울때까지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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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Ticket " 은 1995년 11월 3일에 NBA에서 가장 어린 선수로 정규시즌에 데뷔했다. 19살이었던 가넷은 4개의 슛을 모두 성공시켰고 팀이 세크라멘토에게 95-86으로 패한 경기에서 16분동안 8득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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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1일 가넷은 미네소타와 6년 126밀의 계약을 맺었다. 그 계약은 당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엄청난 다년 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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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의 엄청난 계약의 결과 하나. 가넷의 엄청난 계약은 미래가 창창하던 가넷과 스테판 마버리 콤보의 이른 이별을 가져왔다. 1996년 드래프트 당일 트레이드로 미네소타에 합류한 마버리는 오랫동안 가넷의 조력자로 활약할 것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둘은 1997년에 팀버울브즈를 역사상 첫 플레이오프로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9년 3월 가넷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 플레이하는데 불편함을 표시해오던 마버리는 결국 3자간 딜을 통해 뉴저지를 가버렸고 미네소타는 터렐 브랜든을 데려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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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의 엄청난 계의 결과 둘. 가넷의 엄청난 계약은 리그의 룰을 바꿔버렸다. 맥시멈 셀러리와 루키계약등이 포함된 새로운 CBA협상과정에서 NBA는 lockout 을 경헙했고 1998~99시즌을 단축시즌으로 치뤄야했다.(그러나 가넷은 lockout 이후의 계약에서도 5년 100밀의 재계약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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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은 또다른 사이드 킥 월리 저비악과 함께하면서 굴곡을 겪었다. 가넷은 2000년에 연습에서 저비악과 의견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둘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4년연속으로 울브즈를 50+승 팀으로 이끌었다. 저비악은 2006년 1월에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7년 6월 레이 앨런 드래프트에 끼워져 시애틀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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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은 미국팀이 8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던 시드니 올림픽에서 미국팀의 두번째 리딩 스코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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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가넷은 미네소타에서 계속되는 플레이오프 실패를 맛봐야했다. 울브즈는 1996~97시즘부터 7년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마침내 2004년 케빈 가넷에 샘카셀과 라트렐 스프리웰이 가세한 미네소타는 서부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레이커스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후 미네소타는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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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은 2003년 올스타 게임에서 37득점 9리바운드 5스틸을 기록하면서 두번의 연장끝에 서부팀의 155-145 승리를 이끌었고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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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MVP 투표에서 가넷은 만장일치에서 3표 모자른 득표를 하면서 2004년 NBA MVP에 선정되었다. 이 해에 가넷은 총득점과 총리바운드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한 역대 5번째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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